작품감상

시, 에세이

카테고리 시(詩)
제목 나는 2017년 8월 6일 오후 12시 22분에 합천 해바라기 꽃길 위에 있었고, 당신은
작성자 newroseandfox
작성일자 2023-12-13

나는 2017년 8월 6일 오후 12시 22분에 합천 해바라기 꽃길 위에 있었고, 당신은


1.

그러니까 그날 오전 9시에도 지구는 둥글었고 많은 사연들이 있었지만,
시(詩)의 시작은 북극곰으로 하자

지구온난화 덕에 머리털을 염색하게 된 북극곰은 맘 놓고 잠잘 자리도 잃게 되었는데,
그걸 보고
에어컨을 틀지 말자고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고 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댓글들을 달았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 댓글들조차 읽지 않은 채로 자동차에 올라 에어컨을 켰다

-휴가의 마무리를 위해서

2.

그날 오전 11시에도 지구는 왁자지껄했고 여전히 천장에 구멍이 뚫린 채였지만,
나는 합천으로 향했다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에어컨을 틀었고 카페에 들려 일회용품 용기에 커피를 받았고
휴게소에 들려 휴지를 풀어 밑을 닦고 코를 풀고 침을 뱉었다
잠시 북극곰에게 미안해지긴 했지만,

천장에 구멍이 뚫린 지구의 여름이란

-이미 그런 거니까

3.

정오를 조금 넘겨 나는 해바라기 꽃길에 이르렀지만,
거기에는 그저

벌들이 날아오르는 소리,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
거름이 묻어 독해진 흙내음,
해바라기,
해바라기,
해바라기,
그리고
불볕을 고스란히 정수리와 목덜미에 고루 얹은 내가 있고,
그 해바라기 꽃길을 따라
당신에 대한 기억을 쫓는
당신에 대한 감정을 되짚는
당신에 대한 열정을 의심하는

내가 있고,
내가 있고,
내가 있고.

-그래서 단 한 번도 나는 당신을 들여다보질 못했지.

4.

한 시간도 채 머물지 못하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지만,
시(詩)의 마무리도 해바라기 보단 북극곰으로 하자

이제 핸들만 돌리면
나의 오늘은 다시 내 안에 고스란히 남을 테고
구멍 뚫린 지구의 천장은
더,
더,
더,
커질 테지만

-당신은, 당신의 시선이 늘 머물러 있던 그는,
이 우주(宇宙),
몇 번째 지구,
그 언제쯤에서 잊히고 있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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