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감상

시, 에세이

카테고리 에세이
제목 누님 전(前) 상서(上書)
작성자 newroseandfox
작성일자 2023-12-13

누님 전(前) 상서(上書)


사무실을 내고 벌써 두 번의 월세를 냈다. 달에 오십만 원이니 이미 일백만 원의 돈을 쓴 거다. 적지 않은 돈이다. 아니, 태산처럼 무거운 금액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마음 졸이면서 벌어야 벌 수 있는 돈인데, 그걸 가만히 앉아서 날려먹었다. 마누라가 바깥일을 하고, 아기는 부모 형편에 따라 좁은 차의 시트에 실려 돌아다니는 동안 달마다 꼬박꼬박 피 같은 돈은 건물주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신사임당 누님을 향해 말라서 헛헛한 웃음을 지어본다.

제 계좌는 쉬시기에 쪼오까 불편하시던 건가요잉?

대답이 돌아올 리 없음에도 괜히 또 애꿎은 믹스커피만 축내며 기다린다. 아니, 기다리는 척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하긴 한다. 분명 자판을 두드리기도 했고, 연습장에 뭔가를 빼곡하게 메모도 했고, 사람을 불러 회의 비슷한 것도 해보고, 거래처라고 할 만한 곳에 확인 전화도 몇 통 했던 거 같다. 그렇다, 척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그럴싸한 액션을 많이 취하긴 했다. 조급함 속에서.

아니, 시방 벌써?

늘 그랬다.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은 너무 빨랐고, 덕분에 일주일의 주기도 너무 짧았고, 다소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런 흐름에 비해, 나의 속도는 형편없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려면 음식물쓰레기가 눈에 들어오고, 작정하고 숨을 몰아쉬면 저녁 밥상을 차릴 시간이었고, 끊어질 것 같은 정신줄을 고쳐 잡자니 내딛는 발밑에 아이의 장난감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빠졌고, 힘이 빠지니 덩달아 체력이 빠졌고, 체력이 빠지니 머리털도 빠질 판이 되었다.

옘병할!

살면서 이런 답답함을 느낄 줄 몰랐다. 일을 하고 싶다니! 게을러터진 내가 일을 하고 싶다니?

마누라와 마주 앉은 저녁 밥상 앞에서 밥 대신 말을 삼키고 있자니 현실이 모래알처럼 씹힌다. 일에 치여서 돌아온 마누라가 아이에게도 치여 버럭 소리를 지르고, 부모의 안위 따위보다 눈앞의 즐거움이 깨진 게 더 분한 아이도 소리를 지른다. 지극히 평범한 이 순간, 일상의 한 페이지, 그런데 지금처럼 이래서 이게 유지가 될까?

다행히 머릿속 주판은 타닥타닥 빨리도 셈을 하고, 내게 긍정적인 뉘앙스로 숫자들의 이모저모를 알려주지만, 이미 입안이 퍼석해진 나는 제법 냉소적이다.

그래서 그기 다 뭐드라고? 당장은 일단 마이너스라는 거잖혀? 겨, 안 겨?

어렵사리 아이를 재우고 온 가족이 거실에 몸을 눕히면, 마누라는 이런 내 속일랑은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스마트폰만 바라본다. 남편을 방치하고 만지는 거니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매일매일 몸을 바닥에 엎드리고 하는 건 십 원, 이십 원을 모으는 짠내 나는 앱테크나 영양가 없는 커뮤니티 농담들을 훑어보는 게 고작이다. 난 바닥에 눌려 납작해진 아내의 젖가슴에 코를 비집어 넣고 앓는 소리를 한다.

이러다 망하겠다, 망하겄어. 닌 걱정도 안 뎌? 시방 뭘 믿고 그리 태평혀?

내가 걱정을 왜 해? 그런 마음이면 망해도 알아서 나가서 일해갔고 벌어오긋지. 아니, 당장 망하기 전에 뭐라도 하겠지. 지금도 그리 애를 졸이는데.

말문이 막혀 그대로 몸을 둥글게 말아 아내의 살 내음만 맡는다. 그것도 잠깐, 다시 머릿속 주판이 타닥타닥 빨리도 셈을 하고, 떠나보낸 신사임당 누님의 이목구비가 흐릿하게 떠올라서 손에 잡힐 것처럼 부유한다.

누님, 고마 싸게 싸게 돌아오드랑게. 곳간 비울만큼 비웠으니 다시 채워주셔야지라잉. 내가 열심히는 안했다지만, 그렇다고 방향성이 어긋난 적은 없다 안 혀요? 참말이랑께. 보드라고, 여기 와서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드라고! 나가 이 와중에도 어쩠게 거시기를 요로코롬 거시기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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