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감상

시, 에세이

카테고리 에세이
제목 Egg Money
작성자 newroseandfox
작성일자 2023-12-13

Egg Money


캬아악, 퉷!

답답한 마음에는 약도 없다. 그저 가래나 한껏 끌어올려 길바닥에 보란 듯이 뱉어볼 뿐이다. 길바닥에 퍼질러진 싯누런 덩어리가 마치 내 처지 같아 보여 괜히 짠하다. 다행히 주변에는 지나가는 행인 한 명조차 없다. 부끄러운 짓을 했으니, 부끄러운 짓을 들키기 전에 자리를 떠야겠다. 싯누런 가래는 한 나절이 넘도록 햇볕에서 말라갈 테고, 그동안 역하고 고얀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정체모를 세균들도 거리 위에 흩뿌리게 될 테다.

매우 부끄럽지만, 동시에 세상을 향해 이런 소심한 복수 밖에 할 수 없는 스스로가 애처롭기도 하다. 답답하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하루에 2만원씩은 더 벌어야 한다. 꾸준히 벌어야 한다. 그래야 목표하는 돈을 모을 수 있고,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불경기에 그런 좋은 벌이가 있기는 할까? 필요한 건 하루 2만원씩인데, 숨을 쉴 때마다 2미터씩 묵직한 장벽이 가슴께로 무너져 내리는 듯하다.

거기 아파트 오래되어서 낡았다던데? 평수도 작고. 그럴 거면 차라리 대출을 확 당겨서 넓은 평수로 가라고 하던데? 어차피 아파트값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돈 모으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라고 하더라.

세상물정이라곤 눈곱만치도 모르는 순해 빠진 여자 친구. 사랑스런 내일의 신부에게는 죄가 없다. 죄라면, 자기네들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내 여자 친구에게 투영시키는 주변의 오지라퍼들에게 있다. 나라고 왜 25평 아파트가 싫겠는가? 방 3개, 욕실 2개의 그 구조가 왜 탐나지 않겠는가? 아니, 스무 살 이후로 조막만한 원룸을 벗어나 보지 못한 내가 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이 없겠는가? 그네들도 쉽게 살아보진 못한 아파트, 혹은 그네들이라서 별 어려움 없이 장만했던 시절의 아파트를 여전히 상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망할 아파트가 평당 천오 백, 천팔 백, 이천씩 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는, 그냥, 돈이 없을 뿐이다. 당장 1억 넘는 현금이 없을 뿐이다. 내 나이 숫자는 앞자리가 또 변할 때가 되었는데, 통장의 잔고는 외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모양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결혼준비가 순탄할 리가 없다. 이것도 저것도 더는 줄이지를 못해 부모님들이 입으실 옷을 허름하게 만들고, 결혼반지도 다이아 큐빅은커녕 금반지도 아닌 은반지로 퉁 칠 판이다. 피가 거꾸로 솟다 못해 마를 것 같다. 어젠 하다하다 신혼여행 비행기 안에서 즐길 기내식마저 생략하기로 했다. 정말, 이러다간 신혼여행을 동네 공원으로 김밥 싸서 갈 판이다. 아니, 그마저도 돗자리까지 구색을 갖추지 못할까 걱정이다.

수상하기는 많이 수상하다. 어째서 돈이 없는 걸까? 그간 힘들게 달려왔는데, 왜 망할 아파트들은 나의 전력질주 따위를 우습게 만들어버린 걸까? 어째서? 김밥천국 참치김밥 한 줄도 아까워서 편의점 삼각김밥에 위장을 맞추었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럽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시원시원하게 참치김밥, 치즈김밥, 사이좋게 한 줄씩 즐기는 사치스런 삶을 살았어야 했다.

캬아악, 퉷!

더는 끌려올라오는 가래도 없다. 마른 헛기침으로 목만 따갑다. 가슴께로 또 2미터가 넘는 장벽이 무너져 내린다. 공허의 압박은 매번 짜릿할 정도로 실감난다. 그래도 아직은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비록 신혼여행은 저가항공으로 캐리어 가방 하나 제대로 못 챙기고 떠나게 될지는 몰라도 다행히 우린 저금을 할 수 있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 그녀를 닮고, 나를 닮은 아이는 당장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의 예적금 통장은 새로 키울 수가 있다. 여전히 계절마다 결로가 찾아오고, 화장실 문짝이 물에 썩어 뜯겨지는 꼴을 봐야한다 하더라도 풀옵션의 13평 쓰리룸에서 시작한다면, 아직은 가능하다. 아직은, 둘이 함께 일해서 저금을 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해마다 삼천만 원씩은 모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 삼사년 뒤에는 정말 대출을 받아서 20년된 25평 아파트를 지를 수 있을지 모른다.

헌데, 그러려면 하루에 2만원씩은 더 벌어야 한다.

대체 어떻게 벌 수 있을까? 부업으로 야설을 쓸까? 무협지를 쓸까? 다시 퀵서비스를 할까? 아, 모르겠다. 당장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화가 그려진 천 원짜리부터 주머니에 있는지 봐야겠다. 안되면 급한 대로 녀석을 길바닥에 세워놓고 욕이란 욕은 다 해줘야겠다. 나도 이판사판이니 애미애비 욕은 기본으로 깔고서 말이다. 그러면 이황 녀석이 시뻘겋게 열이 받아서라도 율곡 이이가 되지 않을까? 그럼, 녀석을 다시 냉장고에 넣고 얼려야겠다. 주둥이가 시퍼렇게 될 때까지 얼리면 세종대왕님이 되실지 모르지. 정말, 천 원짜리 한 장으로 구천 원을 남겨 먹을 수 있는 괜찮은 장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님, 주둥이가 시퍼렇게 얼어붙은 그 녀석을 내 싯누런 가래 위에다 올려놓고 야무지게 비벼봐야겠다. 잘만 되면, 신사임당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무슨 개소리를 이렇게 열을 내면서 하냐고? 완공된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를 보고 억이요, 억이요, 호가라는 노래를 부르는 작자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에 이 정도 개소리는 그래도 그나마 퍽 양호한 편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허튼 개소리가 로또 보다는 빠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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