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감상

시, 에세이

카테고리 에세이
제목 민지와 상아에게 쓰는 편지
작성자 newroseandfox
작성일자 2023-12-13

나의 사랑스런 조카들, 민지와 상아에게 쓰는 편지
    - 인생의 2쿼터를 시작하려는 너희에게


안녕, 삼촌의 자랑스러운 조카들?

삼촌이 너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보는 건 처음인 것 같구나. 사실 그간 얼마나 써보고 싶었는지 모른단다. 너흰 정말 상상도 못할 게야. 삼촌은 사실 겁도 많고 소심해서 어렸을 적부터 입을 열어 말을 하기보단 늘 신중하게 펜으로 글을 써서 상대에게 삼촌의 뜻을 전달하곤 했었단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지만, 여전히 그 버릇이 남아있단다.

그래, 삼촌은 나의 조카들에게 좋은 삼촌이고 싶고, 멋있는 삼촌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요 어린 것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미움을 받으면 어쩌나 하고 바보같은 걱정만 하고 있었던 게야. 바보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소심하게 뒷걸음질 쳐서 편지지와 펜을 찾는 이유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는 또 없단다. 글을 쓰는 삼촌은 평소의 삼촌보다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멋지고 유머러스한 신사가 되기 때문에 이 편지를 읽는 동안은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을 테니까.

오늘 지금 쓰고 있는 편지가 너희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이지만, 삼촌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제쳐두고 우선 삼촌의 중,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줄까 해. 혹자들은 그 시기를 가리켜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 사회의 주변인 등등 여러모로 겉만 번지르르하고 애매모호한 표현들을 쓰지만, 개인적으로 삼촌은 그 시기, 삼촌의 그 시절을 ‘세상이 나에게 처음으로 농담을 건넸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단다.

농담.

그러고 보니 곧장 이 삼촌에게 장난을 걸고 떼를 쓰는 상아가 떠오르고, 자연스레 상아의 별로 웃기지도 않는 농담에 실소를 한 번 흘리고 돌아서는 민지도 떠오르는구나. 그래, 사실 농담은 시시껄렁한 법이지. 아주 재미나고 유쾌한 농담이라고 해도 돌이켜보면 별 대수롭지도 않은 말장난이었거나 누군가는 쉽게 웃어도, 누군가는 쉽게 웃지 못하고 인상이 쓰일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 태반이지. 하지만, 우린 일상을 보내면서 그런 자잘한 농담들을 쉬지 않고 흘리며 다니지. 재미난 건 이 세상도 우리에게 그런 농담을 흘리며 다닌다는 거야. 이제 조금 우스워지는 것 같지 않니?

잠시 이쯤에서 편하게 드러누워 상상을 한 번 해보자. 주말 오후 나른한 시간대에 TV에서 B1A4가 나온 거야. 민지가 그렇게나 아껴주는 B1A4들 말이야. 삼촌은 여전히 그 아이돌그룹 누구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로 있다지만, 그런 삼촌이 민지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툭, 하고 말을 내던지는 거야.

“아, 삼촌도 쟤네들 알아. B4용지, A4용지. 걔네들 맞지?”

민지 입장에서는 우습지도 않은 농담일 거야. 아니, 어쩌면, 속으로 삼촌 싫어, 정말, 싫어하고 몇 번이나 외치게 될지도 모를 농담일 거야. 하지만, 어쩌겠어? 먼저 농담을 내던진 건 삼촌이지 민지가 아닌 걸? 이 농담을 전면 무시할지, 흘려듣고 말 것인지, 아님, 제대로 되받아 쳐줄지는 이제 오로지 민지만의 몫으로 남은 거야.

이건 상아라고 해도 어찌 피하거나 예외일 수가 없는 경우야. 마찬가지라는 거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상익이, 상운이와 함께 주말 오후 나른한 시간대에 TV를 보고 있었다고 상상해봐. 정확하게는 상익이와 상운이는 컴퓨터를 하고 있고, 상아는 TV를 보고 있는 거지. 그것도 놓쳤었던 수목드라마를 재방송으로 한참을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컴퓨터를 하다말고 방에서 튀어나온 상운이가 갑자기 TV를 꺼버리는 거야. 그리고 뒤이어 달려 나온 상익이가 이번에는 리모컨을 빼앗아 달아나는 게지. 어때, 상상하기 쉽지?

하여튼 이 순간에도 상아는 아직 선택을 할 수가 있어. 곧장 달려가서 동생들을 다 자빠트리거나 아님, 그 자리에서 목 놓아서 울거나, 방으로 들어가서 동생들 컴퓨터의 전원코드를 숨겨버린다거나…. 다만, 먼저 장난을 걸고, 농담을 던진 건 동생들이니까 상아가 장난에 걸리고, 농담에 걸린 걸 다시 되돌릴 수는 없어. 답답하고 억울하면, 딱 그만큼 동생들을 혼내주거나 반대로 드라마가 의외로 질질 끌어서 딱 재미없어질 찰나였다면, 상아도 그 자리에서 동생들과 웃고, 떠들며 즐기거나….

헌데, 뭐, 이 정도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일이고, 너희가 지겹도록 겪었던 일들 중 하나일 거야. 그래서 다시 눈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너흰 전혀 새로울 것도 없을 것이고, 꽤나 담담하게 반응하겠지. 하지만, 이런 자잘한 농담들 말고, 정말 징그러운 건 앞으로 세상이 너희에게 건넬 농담이란다. 삼촌은 딱 너네만할 때쯤부터 세상이 마구잡이로 건네는 농담에 어찌 대응해야할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정신없이 질질 세상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녀야 했었단다.

그런데 세상이 건네는 농담이 대체 어떤 것이냐고? 그래, 삼촌도 이제부터가 정말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란다. 얼른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폭풍처럼 휘갈겨 써내려 봐야겠구나!

민지와 상아가 생각하기에, 세상은 어디까지가 세상이고, 세상의 팔과 다리, 입은 어디에 붙어있는 것이라 생각을 해? 삼촌은 사실 중학생이 될 즈음부터 해서 줄곧 그게 고민이었어. 어디서부터 어디가 세상이고, 난 그 세상의 어디쯤 속한 것일까? 헌데, 그건 교과서에도 안 나와있었고, 학교 선생님도 몰랐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몰랐어.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때의 삼촌은 그건 꼭 삼촌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물어보질 않았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너무 멍청하고 부끄러운 생각이었지. 하하하.

하지만 삼촌은 스스로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어. 세상은 삼촌이 어찌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둥글고, 어마어마한 것이면서, 동시에 팔도 다리도, 입도 따로 있을 수가 없는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걸 말이야. 이전부터 적당히 비굴하고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삼촌은 그래서 그런 세상으로 눈에 뛰지 않으려고 무엇을 하든 적당히 묻어가려고 했었단다. 학교를 다니면서 꼬박꼬박 교복을 챙겨 입고, 시험기간이랍시고 어떻게든 공부하는 척 책상에 앉아 있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모나지 않게 행동해서 조용조용 적당히 평온하게 묻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오래지 않아서 삼촌은 스스로 또 대단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건 정말 엄청난 거였는데, 세상이란 놈은 삼촌의 생각보다 훨씬 더 악랄해서 누구에게든 농담을 마구잡이로 날리고 본다는 거였어.

요즘말로 하자면, 일진이 따로 없는 게야. 내키는 대로 누구든 붙잡고 장난을 걸고, 농담을 던지지. 상상을 해봐, 팔다리가 따로 없고, 입도 없고, 딱히 머리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는 무엇이 네게 건네는 농담이란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삼촌이 세상으로부터 건네받은 첫 번째 농담은 정말 악랄하면서도 허탈한 것이었고, 덕분에 요즘에도 간혹 씁쓸해지곤 한단다.

‘넌, 다른 사람들보다 다리가 좀 짧을 거야! 숏다리, 숏다리, 이경민~!’

뭐, 세상에게 입이 있었다면, 대충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삼촌은 초등학교 6학년때 살짝 크는 듯하더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년에 1cm씩 정도밖에는 자라지 않았단다. 웃긴 건 다리가 좀 짧았다 뿐이지 삼촌은 다리길이에 비해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면이 많았단다. 그리고 그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지. 그래서 알 수가 있었어. 아, 이건 세상의 농담이구나?

세상의 다음 번 농담도 그리 참신하지는 않았단다.

‘이경민, 넌 다른 건 몰라도 스포츠장애 3급이 분명할 거야, 크하하하!’

삼촌이 유일하게 즐길 줄 아는 구기종목이 농구란다. 뭔가 좀 우습지 않니? 다리 짧은 삼촌이 유일하게 즐긴 운동이 농구였다는 게? 다른 운동은 정말 못했단다. 여전히 못하고 있지. 심지어 군대를 다녀왔어도 여전히 축구공이 무서워서 근처도 가지 않는단다. 그 뿐만이 아니야, 수영도 물에 뜨지 않아서 다니다 말았고, 인라인스케이트나 스케이트보드 같은 것들도 스피드가 조금이라도 붙으면 겁이 나서 달리지를 못한단다. 하지만, 너희 삼촌이 어떤 삼촌이니? 카드로 자유자재 마술을 부리고, 별다른 준비물 하나 없이 너희들 배꼽을 빠지게 할 수 있는 사람이란다. 게다가 삼촌이 좀 똑똑하고, 좀 뻔치가 좋아야지, 외국여행 나가서도 외국말 한 마디 안 쓰고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는 게 너희 삼촌이잖니? 그러니 뭐, 스포츠장애 3급쯤이야?

하지만 이런 삼촌도 매번 세상의 농담 앞에서 당당할 수는 없었단다. 눈물, 콧물 쭉 쏟아낼 만큼 잔인한 농담들도 많이 들었지. 그러고 보니 삼촌이 자랄 때마다 세상이 건네던 농담도 딱 그만큼 점점 더 독해졌었던 것 같기도 하네. 하지만, 그게 다 농담이었단 사실은 변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아. 조금씩 차이는 있었다고 해도 어느 것 하나 견디지 못할 것들은 없었고, 웃어넘기지 못할 것들도 없었어. 그냥, 시간이 지나서는 뭐든, 깔깔깔 웃어 보일 법한 일들이었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몰라. 상아와 민지의 나이를 합한 것의 갑절이 되더라도 모르는 어른들이 참 많아. 삼촌의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세상의 농담에 그냥 욱해버리고 무너져 내린 사람들이 종종 있었단다.

어떤 친구는 수능시험 보던 날 거짓말처럼 OMR카드를 한 칸씩 밀려 쓴 덕택에 인생 꼬여 재수를 하게 된 친구도 있었고, 어떤 친구는 육상선수가 되겠노라고 매일같이 땀을 흘리며 연습만 했었는데, 시합을 앞두고 인대가 끊어져 꿈을 접어야 했었고, 어떤 친구는 뒤늦게 정신 차리고 군대에 입대해 보니 다섯 살이나 어린놈들에게 반말과 구타를 당하고 있었어. 헌데, 이 많은 일들이 어느 날, 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던 거야. 누구도 준비하지 않았고, 누구도 준비의 필요성조차 모를 수밖에. 고등학교 3년 내내 보던 모의고사에서는 한 번도 답안지를 밀려 쓴 적이 없었던 사람이, 늘 연습하며 달리던 트랙을 평소처럼 그저 달리기만 했었던 사람이, 평소에는 늘 후배와 동생들에게 덕망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그런 거짓말 같은 일들을 한 번쯤 상상이나 해봤겠어? 하지만, 세상이 건넨 농담은 그들에게 그렇게 찾아왔단다. 그들은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어. 그저 주저앉아서 울거나,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술만 마시거나, 도망칠 곳조차 없단 생각에 목숨을 내려놓은 경우도 있었지. 세상이 그들의 인생을 위해 준비해둔 농담이 그들에겐 솔직히 좀 너무 과했던 거야. 아니, 과해서 그런 것일까? 삼촌도 솔직히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세상의 농담은 무차별적이고, 누구에게든 한 번쯤은 감당 못할 크기로 다가선다는 거야.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런 농담 앞에서 무너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농담을 흘려버리고 당당히 일어서기도 한다는 것이지.

삼촌은 내심 두근거리면서도 걱정이 된단다. 아마 너희들의 앞날에도 세상은 무시무시한 농담들을 준비해뒀을 텐데, 너희들이 적당히 잘 받아넘길 수 있을지. 아님, 그때가 되어 누군가의 다른 도움이 필요할지. 그것도 아님, 그저 시간만이 너희들에게 답이 될지. 솔직히 삼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단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펜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단다. 삼촌은 혼자서 모든 답을 찾으려다 보니 이게 다 세상이 건넨 농담들이었단 걸 깨달을 때까지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필요했었단다. 그나마 삼촌에게 인생의 팁이 되어 주었던 건 소설들이었단다. 소설들마저 읽지 않았었다면, 삼촌은 아마 지금도 답을 찾아서 헤매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너희보다 먼저 세상에 나와, 세상의 농담을 먼저 건네받았던 삼촌이 너희에게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거란다. 그래도 내가 너희에게 아주 작은 팁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러니까 민지와 상아도 지금 당장은 이 삼촌의 편지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어느 날 세상이 건네는 농담이 이해가 되는 날이 오거든, 네 동생들, 민석이, 상익이, 상운이를 위해서 지금의 이 이야기를 다시 해줄 수 있길 바라.

그럼, 이쯤에서 삼촌은 펜을 놓을까 해. 더 구구절절하게 길게 늘여서 쓰지 않더라도 이쯤이면, 너희를 곱게 여기는 삼촌의 마음 정도는 전해졌으리라 믿어. 그리고 당장은 지금 삼촌이 남긴 말들이 어렵게만 보이더라도 얼마큼의 시간만 조금 더 더해지면, 빼곡하게 들어찬 이 문장들 사이사이로 노심초사하고 있었을 이 삼촌의 얼굴도 보일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민지야, 상아야. 사랑한단다. 세상이 너희에게 어떤 농담을 건네게 되더라도.

P.S :

삼촌의 주변 사람들 말고, 삼촌의 이야길 하나만 더 해보자면, 삼촌이 수능시험을 봤었던 날이었어. 그때, 내게 건넨 세상의 농담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

‘똥고집, 고집만 부리다 큰 코 다친다!’

어이없게도 삼촌은 수능시험을 보는 당일, 몸살에 걸렸었단다. 몸살기운이 있다는 걸 사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삼촌은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슬리퍼에, 얇은 운동복을 걸치고 시험장에 갔었단다. 약간 서늘해야 긴장도 되고 집중도 잘 되는 편이라 고집을 부렸던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1교시 듣기시험부터 어지러워 들리지가 않더구나. 시험치고 돌아와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재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삼촌 혼자 생각하면서 말이야. 우습지? 그날은 세상의 완승이었어.

그래도 다시 한 번 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삼촌은 똑같이 슬리퍼에, 얇은 운동복을 걸치고 시험장에 갈 거야. 그리고 똑같이 시험을 말아먹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라면을 끓여놓고 만화책을 읽을 거야. 그리고 혼자서 속으로 되뇌겠지.

‘하하, 큰 코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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