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감상

시, 에세이

카테고리 에세이
제목 딜레마
작성자 newroseandfox
작성일자 2023-12-13

딜레마


내 나이 열여섯 살이던 그 해의 봄. 나는 아파트 옥상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사춘기 소년이 삶과 죽음을 선택하고픈 충동을 느꼈다는 게 그리 대수로울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당시의 나를 누르던 무거운 우울이 무너진 백화점과 고가의 다리에서 잉태되었다는 건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고작 중학생 주제에 어째서 사회를 향한 연민과 책임, 절망을 고스란히 혼자서 끌어안으려 했을까?

물론, 그런 거창한 것들보단 결국 가족들에 대한 감정이 나를 난간에서 물러나게 만들었지만, 간혹 요즘도 그때, 그날이 생각난다. 그날의 푸르른 하늘과 따스한 햇살, 간지럽던 바람, 글쟁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던 마음 속 외침과 내 신발 끝자락에 떠밀려 옥상 밑으로 굴러 떨어져내리던 조그만 돌멩이까지.

우스운 건 그런 것과 별개로 사고를 친 건 마흔 살의 나다. 결국 꿈꾸던 것과는 달리 글쟁이가 되지 못했다. 글쟁이를 곁에서 보고 흉내 내는 정도까진 폼이 오른 듯했지만, 현실은 폼만으론 부족하다. 매번 고르게 결과를 낼 수 있는 자들이 프로가 되는 법이다. 그것도 우아한 자태로. 그러니 천박함이 몸에 베인 내가 글을 써서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 건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다. 그들과의 실력 차이가 오늘의 내 직업을 정했다.

나는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관리자다. 그리고 난 최근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

세세하게 이야길 하자면 내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 단순하게 한 문장으로 처리하겠다. 운영 권한을 위임 받은 내가 그간 적자 운영을 해왔다.

사업까지 이야기가 갈 게 아니라, 단순히 동네 구멍가게에서 장사를 하더라도 이문이 남지 않으면, 물건을 팔지 않아야 하는 게 이치다. 난 동서고금 불변의 이치를 어겼고, 그것도 꽤나 긴 시간을 그렇게 지내왔다는 거다. 왜? 그만큼 일이 하기 싫었다. 더는 내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았고, 더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실리콘 덩어리들을 만지고 싶지 않았다. 왜? 혹시 모를 일이라서. 내가 폼이 올라왔을 때, 조금 더 도전을 했다면, 아니, 지금이라도 당장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도전을 한다면, 다시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폼이 올라와줄지 모를 일이 아닐까?

여전히 천박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있다.

매출을 늘리는 건 쉬운 일이다. 그냥 더 팔면 된다. 파는 것도 쉬운 일이다. 광고를 많이 하면 된다. 광고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광고업체에 맡기면 된다. 여기서 적자가 나는 것도 그러니 굉장히 쉬운 일인 거다. 물건이 덜 팔릴 때마다 장부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광고업체에게 돈을 더 주면 되는 거다. 이전보다 더. 왜, 요즘 유행어도 있지 않은가? 묻고, 더블로 가!

결국, 그간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일거리만 두 배로 늘어나 버렸다.

그만두고 싶다. 떠나고 싶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글쟁이로 살고 싶다. 열여섯의 내가 그렇게 외쳤지만, 함부로 뛰어내리지 않았던 건 가족들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만두고 싶다. 떠나고 싶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글쟁이로 살고 싶다. 마흔의 나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여전히 똑같은 외침을 하고 있고, 여전히 함부로 사표를 던지지 못하고 있는 건 가족에 대한 감정 때문이다.

난, 나의 아내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불안이나 경제적 궁핍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 따윈 눈곱만큼도 없다. 그래서 버티는 중이다.

버티고, 버티고, 버티면, 또 좋은 순간이 오니까. 존나게 버티라고 알려주시던 이외수 선생이 최근 뇌출혈로 쓰러졌던 걸 생각하면, 과연 회사에서 버티는 게 옳은 선택인가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나의 이런 복잡한 마음을 헤아려서 회사가 먼저 나를 잘라주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막대한 손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고 곁에 두려는 걸 보면, 이건 이건대로 전혀 새로운 갑갑함이다.

아, 글을 쓰고 싶다. 하루 동안, 한 달 동안, 일 년 동안, 평생 동안, 오롯이 글을 쓰는데 시간을 쓰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하고, 다시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퇴근길을 맞이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자위, 딜도, 오나홀, AV배우들의 이름 따위를 검색했다. 아니, 그 검색 결과를 다시 판매상품들에 접목시키려 해보고, 광고전단을 수정하려 해보고, 걸려오는 상담전화와 제품발송포장을 했다. 내가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 소설은 여전히 첫 문장의 방점조차 찍지를 못했는데 말이다.

모르겠다. 당분간은 휴일이 찾아와도 휴일이 아닐 것이다. 언제쯤 다시 쓰고 있던 소설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만두고 싶다. 살고 싶다. 그런데 급여일엔 또 급여가 꽂힐 것이다.

아, 또 밤을 넘어 새벽으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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