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감상

시, 에세이

카테고리 에세이
제목 어제와 오늘, 그리고 어쩌면 나와 당신은
작성자 newroseandfox
작성일자 2023-12-13

어제와 오늘, 그리고 어쩌면 나와 당신은


21세기 대한민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세상이 이젠 살만해졌다고들 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과거처럼 연탄불 하나 못 태우는 집이 어디에 있느냐고들 하지만, 저의 지난 시절은 그런 상상력을 조금 우습게 허물어버릴 정도죠.

제가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나이에 비해서 영특한 것도 맞았고, 욕심이 없었던 것도 맞았지만, 나이에 비해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어요. 타인들의 욕심을, 그 크기를 감히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 오해한 덕이었죠. 네, 저는 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망한 사람들은 빚을 갚죠. 빚을 빛보다 빨리 갚아야 다시 남들처럼 살 수 있으니까요. 아니면, 빚을 그대로 두고 잊은 채 살아가기도 하죠. 빚이 빛바래 모두 잊을 정도가 되어도 살만하니까요.

근데 저는 어리석게도 무조건 빚이란 건 빛보다 빨리 갚아내야만 하는 어떤 것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갚아갔습니다. 덜 먹고, 덜 입고, 그랬어요. 이렇게만 말하면 감이 안 오실 것 같아서 조금 구체적으로 적어보겠습니다. 일단 저는 다가구, 다세대가 공용화장실을 쓰는 곳에서 살았어요. 만촌시장이라고 아세요? 달에 십오만 원 하는데, 문자 그대로 시장 통이에요. 방과 방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집집마다 있을 것들이 있지만, 화장실은 없더군요. 그래서 다 같이 쓰는 화장실을 썼어요. 그게 뭐 대수겠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게 여간 우스운 꼴을 만드는 게 아니랍니다.

하루는, 늦은 밤에, 설사가 터져서 공용화장실로 뛰어들어 간적이 있었어요. 일발장전을 인식하기도 전에 밑이 통째로 빠져나가버리듯이 나간 뒤였죠. 뒤를 닦아낼 힘도 없어서 코를 훌쩍이고 있는데, 밖에서 어린 남녀가 쪽쪽 빨아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맞아요, 모텔 잡을 돈 없는 십대들이 거기까지 흘러들어온 거죠. 뒤를 훔치다 말고 저도 모르게 또 한 덩어리가 흘러내리면서 냄새가 다시 퍼지니 그제야 헛구역질을 하며 뛰쳐나가더라고요. 그제야 민망해 지더군요, 제 신세가.

사실 그 정도까지야 제가 불편한 게 아니라, 남이 불편한 꼴이니 견딜 만 했었어요. 하지만, 문자 그대로 제가 불편한 건 그대로 기억에 남는 법이죠. 보일러는커녕 순간온순기 조차 없었어요. 그걸 돈을 들여 시설을 갖출 엄두도 나지 않았죠. 그래서 대한민국 세금 중 가장 싼 전기세를 이용했어요.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죠. 두 번을 연달아 끓여서 대야에 물을 담았죠. 그 물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어요. 감기요? 상상하시는 대로에요. 달고 살았었죠, 뭐, 하하.

네, 뭐, 대충 그렇게 살았어요. 그렇게 살면서 저는 하루하루를 계산해야 했어요. 저의 소비와 소득과 내일을요. 당시에 빚을 갚기 위해 택한 수단이 퀵서비스였어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오토바이를 탔었죠. 과속은 기본이고, 신호위반을 밥 먹듯이, 아니, 하루에 그보다 밥을 먹진 못했으니 비유가 적절하진 않네요. 하여튼 음식 배달대행 퀵서비스를 하면서 한 번 배달대행을 할 때마다 이천오백 원씩 수익을 올릴 때였어요. 당시 제 눈에 비친 세상은 그래서 모든 단위가 이천오백 원이었어요.

짜장면 한 그릇은 배달 두 번. 한 달 전기세는 배달 네 번에서 여섯 번. 하루 오토바이 기름 값은 배달 두 번. 막걸리 한 잔에 파전 한 조각은 배달 여덟 번. 뭐, 그런 식이었죠. 사시사철 검은 옷을 입고. 사시사철 고개를 숙이고. 사시사철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빚을 갚아갔지만, 그래도 빛보다 빠를 수는 없더군요. 덕분에 제 인생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삶을 살면서 내일이라니? 너무 가당치도 않잖아요.

뭐, 어쨌든. 세월이 흘렀어요. 십여 년의 세월이네요. 이천오백 원. 이천오백 원. 이천오백 원. 그러다 직장이란 곳을 찾아들어가게 되었고, 월급이란 걸 받고, 빚을 갚고, 적금이란 걸 넣고, 예금 통장이란 것도 만들어 보고. 그런 세월이었죠. 지금은 어느덧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에 이르렀네요. 그리고 그 숫자보다 조금 많은 연봉이란 걸 받게 되었습니다. 신기하네요. 스스로가 그저 신기할 노릇입니다. 일개 배달원이, 중소기업 십오 년차 차장 정도의 연봉을 받게 되다니요.

물론, 많은 걸 잃었죠. 젊음을 잃었고, 그 젊음이 파생할 열정과 에너지를 잃었고,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사랑을 잃었고, 지금과는 달랐을, 그 시절에만 꿈꿀 수 있는, 비전 속의 제 모습을 잃었죠. 그렇다고 얻은 게 없는 건 아닙니다. 확실히 빚을 갚았고, 젊음을 팔아서 얻을 수 있을 만큼의 경험치를 얻었고, 지금에서야 가능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에야 꿈꿀 수 있는, 비전을 이루어 가는 저를 만났죠.

공용화장실에서 숨죽여 변을 누던 서른 한 살의 제가 있었고, 내일이면 방 세 칸짜리 아파트에 전세 입주를 하는 제가 있습니다. 모두 저인데, 저는 그 두 모습의 저를 떠올릴 때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아직 이게 전부가 아닌데, 더 많은 날을 살게 될 테고, 더 많은 것을 목격하게 될 터인데, 이미 그 간격만으로도 가슴이 너무 저미어 옵니다.

제가 떠나보내야만 했던 사랑과 제가 앞으로 지켜 나가야할 사랑. 그 두 사랑이 같은 하나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데, 그 둘을 똑같은 무게로 안고 있다는 사실이 저의 마음 속 살점을 허물어 버립니다. 지금도 살점이 닳도록 울고 싶네요.

어제와 오늘이 결코 다르지가 않습니다. 한 마음으로 사랑에 슬펐습니다. 나와 당신은 다를지 모르지만, 아니, 이미 당신은 내가 그리워하던 당신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당신을 향해 내딛는 저의 걸음걸음은 다르지가 않습니다.

나의 내일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결말을 맞이하는 당신은 오늘의 당신이길 간곡히 바랍니다. 나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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