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감상

시, 에세이

카테고리 에세이
제목 길을 잃은 용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작성자 newroseandfox
작성일자 2023-12-13

길을 잃은 용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용사의 영웅담을 쓰는 것만큼 재미난 일도 없다. 전설의 용사는 백전백승이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터무니없는 장애물이 등장하여 눈앞에 절망만 남더라도 용사는 굽히지 않는 마음으로 전진하여 기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용사는 절대 굽히지 않는 의지의 힘, 굴하지 않는 용기의 가치를 온몸으로 보여주게 된다. 당연히 독자들은 그런 용사에게 매료되어 함께 심장이 두근거리기 마련이다.

그래,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용사영웅담의 기본 골격은 그렇다. 난 그런 용사의 이야기를 여전히 좋아하는 나이 많은 피터 팬이다.

문제는 피터 팬인 것까지는 좋은데, ‘나이가 많은’ 피터 팬이라는 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식의 용사영웅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용사가 얼마만큼 많은 미녀들을 동료로 두었는지, 얼마나 터무니없이 강하여 시련을 손쉽게 빗겨나가 오히려 시련을 안기려던 모두를 응징하는지에 훨씬 더 관심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조금도 지기 싫은 모양이다. 단 한 순간조차도.

그래서 용사를 용기로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자가 아니라, 절대적인 무력이나 마력으로 단번에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자로 그려주길 원한다. 당연히 서사에서 시련이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게 되고, 용사의 걱정이란 고작 자신의 강함을 얼마나 유용하게 써먹을까 정도에서 그치게 된다. 조금의 빈틈조차 없는 21세기의 용사들을 보고 있자면, 새삼 그런 용사들을 반기는 독자들이 염려스러워진다.

대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갑갑한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런 물음과 고민은 사치다. 당장 갑갑한 현실을 살고 있는 건 독자가 아니라 전설의 용사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나다. 나의 용사는 유행에서 한참 멀어진 모습이라 탄생부터 평탄치가 못하고 성장과정조차 온갖 음모로 더럽혀진 채다. 스스로 글을 쓰면서 이런 쪽이 훨씬 더 리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독자들은 하품을 멈추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맥이 빠진다.

대체 21세기 독자를 상대해야 하는 나이 든 피터 팬은 누가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은 정리되지 못하고 펜은 멈추어 섰다. 본래 실패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글쓰기에서 실패는 성장의 거름이 되어 더 나은 작품으로 되돌아오길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 잠시 멈춘다고 해서 내가 패배자가 되는 건 아니다. 다만, 한정된 자원의 시간이 이 문제에 관여하는 순간부터 내가 안게 될 실패와 성공의 무게도 달라질 뿐이다.

무겁다. 아니, 가볍지는 않다. 아니, 딱 펜이 나아가지 못할 정도의 무게다.

선택지는 이미 좁혀져 있다. 플롯을 해체하고 판을 갈아엎어 다시 처음부터 손을 보거나 일단 쓰던 이야기는 쓰던 이야기대로 마무리를 짓고, 다른 이야길 잘 써보는 거다. 잘 알면서도 쉽게 다시 시작을 못하고 있는 건 사실 유행에 민감한 독자가 무서워서도 아니고, 내가 즐기는 스타일을 고집하고픈 어린 아이 같은 바람 때문도 아니다.

그냥, 흐르는 시간 덕에, 슬슬, 두려운 거다.

길을 잃은 용사는 애타게 나를 찾는데, 오늘도 나의 펜은 용사의 외침을 외면한다. 그저 딱 두려운 만큼만 무게를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늉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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